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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藥)보다는 병(病)을 만들어 팔아라

책 읽는 즐거움 2009. 9. 27. 11:31


<조선일보>가 26일 자에 재밌는 보도를 했습니다.

신비의 묘약이라는 '○○탕' 성분 분석해보니(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9/25/2009092501289.html)가 그것입니다.

발표나 시험 등을 앞두고 불안·긴장감을 완화시켜 준다는 '신비의 묘약'으로 알려진 한약 성분을 분석해봤더니 고혈압 약 성분이 주된 성분이었으며, 복용으로 인한 심각한 후유증도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이지요.

내가 이 기사에서 주목한 것은 "2000년 의약분업(分業) 전 이 약국이 팔던 묘약은 알약이었다. 의약분업으로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프로프라놀롤이 들어간 약을 팔 수 있게 됐다. 그러자 약국은 한약을 달인 것 같은 ○○탕으로 알약을 대체했다."는 기사 문장이었습니다. 이른바 '권력'이 작용한 것이지요.

또다른 부분은 "연구팀에 따르면 프로프라놀롤은 나쁜 기억을 지워주는 효능이 있다고 했다. 당연히 좋을 것 같지만 학계에서는 '두려움 등의 정신병리적 질환을 약리학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는 부분입니다.

이제 이 두 부분을 '교차 읽기'로 찾아보겠습니다.

먼저 <세 바퀴로 가는 과학 자전거> 입니다.
세 바퀴로 가는 과학자전거
카테고리 과학
지은이 강양구 (뿌리와이파리, 2006년)
상세보기


이 책에는 '환자들이 인도 대사관 앞에서 시위한 이유'라는 단락이 있습니다. 지난 2005년 2월에 주한 인도 대사관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과 백혈병 환자들이 모여 시위를 했는데, 그 까닭을 '권력' 차원에서 조명하고 있습니다.

인도 정부는 2004년 12월 26일 '물질 특허 제도'라는 걸 도입하기로 했는데, 이건 우리나라는 이미 20년 전에 도입한 제도입니다. 그런 제도를 인도가 도입한다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도 대사관에서 시위를 하다니요.

그 배경에는 '복제약'이 있습니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막대한 개발비를 들여 신약을 개발합니다. 최근의 신종플루 치료제인 타미플루를 개발한 회사는 그야말로 '돈방석'에 앉았을 거라고 누구나 짐작할 수 있겠지요.

백혈병 치료제로 '글리벡'이 있는데 이게 무척 비쌉니다. 그렇지만 당시까지 인도에는 물질 특허가 도입되지 않았기에, 신약 성분을 분석해 그와 똑같은 성분과 효능을 가진 '복제약(제네릭)'을 만들어 파는 게 불법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글리벡을 복제한 '비낫'은 글리벡의 10%도 채 안되는 가격에 팔렸고, 국내 백혈병 환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됐다지요. 인도 의약계에서는 에이즈 치료약도 이처럼 복제약으로 만들어 팔기도 했답니다.

물론 자본주의 경제체제 아래서 특허권·저작권을 무작정 배척할 수 없기는 합니다만, 결국 특허권은 권력이라는 측면에서 적절한 제재가 필요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실제 글리벡을 개발한 노바티스는 10여년에 걸쳐 1조 원을 들여 이 약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에 상응하는 이익은 보장돼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노바티스는 글리벡을 시판한 지 불과 1년 8개월 만에 1조 500억 원어치를 팔았습니다. 10여년에 걸친 개발비를 불과 몇 년 만에 고스란히 환수했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이익까지 남긴 것이지요."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국어선생님의 과학으로 세상 읽기> 입니다.

(이 책은 책 소개에서 찾지 못하겠네요. 김보일 씨가 짓고 휴머니스트 출판사에서 2007년 9월 3일 발행한 책입니다.)

이 책에는 '질병을 만들어서 판다고?'라는 단락이 있습니다. "병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것은 제약회사들에게 경영상 이익을 가져다 준다. 당연히 그들은 질병이 아닌 것을 질병으로, 정상인 것을 비정상으로 규정한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되는 폐경도 여성 호르몬을 주사하면 치료가 가능한 병이라는 점을 그들은 소비자들에게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우울증 환자의 환경이나 정서나 마음의 문제도 결국 뇌의 문제로 귀결시켜 약물 치료의 대상임을 강조한다."라고 기술합니다.

질병이 없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수많은 인류가 고통에서 해방돼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만, 의사·약사·제약회사 같은 질병과 관련해 먹고 사는 사람들이 당장 실직하게 될 것입니다. 또 자고나면 늘어나는 교회 첨탑이나 사찰 같은 종교시설도 간판 내리는 데가 늘어 부동산 가격 안정에도 조금은 이바지할 것입니다.(지나친 비약인가? ^^)

그러니 의료계에서는 자꾸만 '병'의 범위를 확장하려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이 들어 머리가 세는 것도, 대중 앞에 또는 시험 감독관 앞에 나서려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떨리는 것도, 양간 통통하게 보기좋게 살이 오른 것도, 여성이 나이 들어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폐경도, 어린 아이라면 당연한 산만함도, 월경 전 나타나는 여성들의 당연한 불쾌감도 제약회사에게는 아주 좋은 먹잇감입니다. 불안장애, 아동 주의력 결핍 장애, 월경 전 불쾌 장애, 과민성 대장 증후군 같은 이름을 붙여 약물 치료를 해야 할 대상으로 각인시킨다는 것입니다.


이쯤에서 신종 플루를 생각해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플루 공포증'이라 불릴 정도로 온 나라가 떠들썩 했습니다. 또 추석을 앞두고 혹시나 전염이 확산할까 정부나 의료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병 때문에 단 한 사람이라도 목숨을 잃는다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호들갑을 떨면 떨수록 다국적 제약회사의 잇속만 챙겨주는 꼴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종 플루라는 것도 따져보면 결국 그동안 있어왔던 인플루엔자의 변종이 창궐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약으로만 질병을 다스리려 하는 한, 이러한 신종 질병은 계속 생겨날 것입니다.

더구나 래이 모이니헌과 앨런 커셀스가 공동 집필한 <질병 판매학>이나 로리 앤드루스와 도로시 넬킨이 지은 <인체 시장: 생명공학시대 인체조직의 상품화를 파헤친다> 같은 책에서 밝혔듯이 이미 '병을 만들어 파는 세상'에서 다국적 제약회사의 특허권을 제한하지 않고, 약에만 의존하려는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새로운 질병으로 인한 인류의 고통은 더 커질 것입니다.

질병 판매학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레이 모이니헌 (알마, 2006년)
상세보기

인체 시장
카테고리 과학
지은이 로리 앤드루스 (궁리, 2006년)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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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isilee.tistory.com BlogIcon 구르다 2009.09.27 18: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중플루(돼지독감)의 사망률이 일반독감 보다 낮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타미플루를 개발한 제약회사의 장학생들이 엄청난데 그들이 과장해서 공포를 퍼트린다는 말도 있고요.

    우리는 언론이 앞장서 공포를 조장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사망하신분들을 보면 나이많은 분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이 신종플루가 아닌 일반 독감이 걸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사망했을 가능성이 많았을 겁니다.
    그때도 언론에서 꼬박 꼬박 그것을 보도할까? 아마 아닐겁니다.

    신종플루 때문에 온 사회가 제정신이 아닙니다.



에이즈·패혈증·결핵·신종플루, 같은점 다른점

이슈 트랙백 2009. 9. 22. 14:09

지난 14일 진해경찰서는 에이즈 검사를 미끼로 주부를 모텔로 유인, 성폭행한 혐의로 20대 남성을 구속했다.

 
 
 
  지난해 말 양산시 보건소가 마련한 에이즈 예방법 등에 대한 패널 전시 모습. /경남도민일보 DB  
 
지난 2001년 창원 중부경찰서는 "남편이 에이즈에 걸렸다"고 집으로 전화해 여성들을 성폭행하고 돈을 뜯은 혐의로 ㄱ 씨를 구속했다. ㄱ 씨는 이미 1993년 울산에서 같은 범죄를 저지르다 구속돼 3년 6개월 동안 복역하고 출소했으며 그 뒤 경북 구미 일대에서 같은 수법으로 여성들을 농락하다 역시 3년 6개월을 복역했다. 2001년 무렵 창원과 김해 등 중부 경남 일대에서 같은 수법으로 활개쳤는데도 뜻밖에 당하는 여성은 계속 있었다.

10여 년 전에 통하던 수법이 2009년 현재에도 여전히 통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에이즈 공포'를 꼽지 않을 수 없다. 근래에는 정부가 나서서 에이즈 환자도 성적 접촉만 없다면 악수를 하거나 포옹을 하는 정도로는 감염되지 않는다는 점을 홍보하고 있지만, 80년대 말~90년대만 하더라도 에이즈는 가벼운 접촉만으로도 전염되기라도 하는 듯 알려졌다. 치료약이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염병을 방지하고자 예방 수칙을 강조하다 보니 정작 그 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국민에게 전달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에는 정부도 잘못이 있지만, 병에 대한 가장 많은 정보를 갖춘 의료인들이 침묵했다는 이유도 붙는다.

요즘은 덜하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여름철이면 비브리오 패혈증으로 사망했다는 기사가 간간이 나곤 했다. 이 병은 80년대 중반에 국민에게 널리 알려졌다. 90년대 통영에 있을 때다. 그곳 어민들은 비브리오 패혈증이 공포의 대상이 된 것은 정치권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당시 정치권 실세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했는데 잘 팔리지 않자 패혈증의 위험성을 부풀리면서 수산물 소비를 위축시키고 쇠고기를 팔아치웠다는 것이다. 허황한 주장일 수도 있지만, 패혈증의 위험이 부풀려진 것은 맞다. 건강한 사람은 설령 걸린다 하더라도 목숨이 오가는 지경까지는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 소속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이 21일 질병관리본부로부터 받은 '연도별 결핵환자 또는 사망자 현황'을 보면 국내 결핵 치사율은 7.4%로 신종 인플루엔자 0.07%보다 100배가 넘는다. 2005년부터 최근 4년간 결핵에 걸린 환자는 13만 9497명이고, 사망자 수는 1만 318명이었다. 이는 신종플루 치사율(0.07%)의 100배가 넘는 수치다. 또한 결핵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앗아간 감염 질환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70대 이상이 6906명, 20대가 5712명 발생해 결핵은 노인층이 아닌 젊은 층에서도 발병률이 높았다.

손 의원은 "결핵환자가 신종플루에 감염되면 폐 합병증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큰 만큼 정부가 강력한 결핵퇴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올해 WHO가 발표한 추정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결핵 발병률과 사망률은 OECD 국가 중에 1위로서 인구 10만 명마다 결핵 발생 수는 90명이고, 사망자는 10명으로 집계됐다. 발생 수는 독일·스위스의 15배·미국의 20배이고, 사망률은 이웃한 일본의 3배, 미국의 10배다.

그런데도 정부는 결핵 예방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일선 시·군청에는 결핵 담당 계를 설치한 곳도 있지만 호들갑 떨지 않고 차분히 대처하고 있다. 최근 결핵협회가 나서서 결핵 예방과 퇴치에 애를 쓰고 있기는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폐병’으로 불리던 결핵이 거의 퇴치 된 것으로 알고 있을만치 큰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고 있다.

 
 
 
  지난 12일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전국 여약사 대회장 입구에 열감지카메라가 설치되어 행자장출입자들의 체온을 감시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온 나라가 신종플루 공포에 술렁였다. 올 초 발생한 신종플루에 대해 국내 언론은 '돼지 인플루엔자'라고 보도했다가 뒤늦게 돼지와 직접 관련이 없는데다 양돈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신종 인플루엔자'라고 바꿔 보도할 정도로 '신종플루' 자체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사실 정보가 없기에는 정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의료계에도 초창기 사정은 엇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문제는 사태가 확산하면서 국민 사이에 '공포'로 퍼져 나가는데도 정확한 정보를 알리려는 주체가 나서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초기 전염병의 국내 유입을 막고 늦추려다 보니 어느 정도 두려움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규모로 신종플루 확진자가 확산하고, 심지어 사망자가 나오는데도 신종플루가 얼마만큼 위험한지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사망자가 계속 나오면서 극도의 공포감도 확산했다.

 
 
 
  경상남도의사회가 15일 오후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신종플루 대응과 관련, 도민들의 불안감 해소를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공포감이 극도로 높아지자 급기야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공포감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진화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경남의사회도 14일에야 성명서를 냈으며 15일 기자회견을 하고 두려움에 떨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에이즈나 패혈증이나 신종플루 사례에서 정보를 가진 전문가 집단, 의료계에서 침묵하고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을 때 국민이 치러야 할 피해가 무엇인지가 확연히 드러난다. 이번 신종플루 여파로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관심을 정치에서 신종플루로 돌릴 수 있었다. 의도적이건 아니건 결과가 그렇게 됐다. 정말 국민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대로 알리지 않거나(결핵) 부풀려 알림(에이즈 패혈증 신종플루)으로써 정치권력은 부당한 이득을 얻게 되고, 그에 대해 침묵한 전문가 집단(의료계)은 정치권력의 부당한 의도에 미필적 고의로 부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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